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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그 아름다움 속에 담긴 역사 상식
우리나라의 전통 의복인 한복은 세계에서 화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디자이너들이 한복을 응용해서 패션쇼를 열기도 하는데,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외국인들도 큰 관심을 보이는 한복, 과연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SK Careers Editor 김지수

 

Q1. 조선시대 때에는 저고리 색만으로도 그 사람의 신분을 알 수 있었다?

 

정답 YES
조선시대는 엄격한 신분사회로 의복의 색, 문양, 머리의 모양과 장신구 등을 통해서 신분과 그 사람의 나이 등을 가늠할 수 있었다. 색동저고리는 어린아이를, 노랑색 저고리와 다홍치마는 미혼 여성을 뜻한다. 결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의 경우, 녹색 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었고, 아이를 낳은 여성은 노랑색 저고리에 남색치마를 입었다. 또 중년 여성의 경우 옥색과 자색의 저고리에 남색 치마로 조금 더 어두운 색을 입었다.

 
저고리와 치마 색뿐만 아니라 고름과 끝동의 색을 보아도 그 사람의 상황을 알 수 있었는데, 자주색 고름을 매면, 남편이 살아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고, 청색 끝동은 아들을 낳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것이 의무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표현할 길이 없는 조선시대 여성들은 대부분 이렇게 색깔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냈다고 한다.

 

Q2. 두루마기의 다른 말은 ‘장옷’이다?!


정답 NO
다르다. 위 사진을 보면, 오른쪽이 장옷이고 왼쪽이 두루마기다. 장옷은 두루마기와 비슷한 형태지만 부녀자들이 외출 할 때 사용한 내외용 쓰개이다. 소매 끝에 흰색 끝동에 거들지를 넓게 대었고, 옷고름과 옷깃, 겨드랑이에 다른 색으로 대었다는 점에서 두루마기와 대조적이다. 두루마기는 남녀 모두 착용한 트임 없는 포라고 할 수 있다. 두루마기, 그 이름의 유래가 재미있는데, ‘두루 막혔다’라는 뜻에서 두루마기라고 불리게 됐다고 한다.

 

Q3. 도포는 오직 양반만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정답 YES
도포는 선비들이 평상시에 착용한 겉옷이다. 곧은 깃에 무가 달려 있으며 소매가 넓은 포이다. (조선시대에는 소매의 넓이로도 신분을 알 수 있었는데, 소매의 넓이가 넓은 수록 상류층임을 나타냈다.) 도포의 뒷길은 허리부터 아래까지 뒤 중심을 트고, 그 위에 뒷자락(전삼)을 한 겹 더 달아 말을 탈 때나 앉을 때 엉덩이가 보이지 않고 품위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고 하니, 양반들이 입던 옷이 확실하다.


도포를 입을 때에는 세조대를 띠어야 했는데, 자색은 당상관, 청색이나 녹색은 당하관을 사용했다고 한다. 도포에 따르는 관모는 일반 외출 시에는 흑립을 착용하였다고 한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Q4. 조선시대 때 여자들은 바지를 입었다?   


정답 YES
속바지를 제외하고, 조선시대 때 여성들이 바지를 입는 경우는 말군이 전부였다. 말군은 양반층 부녀자들이 말을 탈 때 착용하는 바지로 형태는 통이 넓고 뒤는 트여있으며 바지 끝자락에 버선이 부착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말군은 조선시대 여성들은 가마만 타고 다녔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옷이다.


 

Q5. 철릭은 유사시에 입던 옷이다? 


정답 YES
철릭은 무관 공복의 일종으로 상의와 하의가 연결되어 있고 가운데 주름이 있는 곧은 깃의 포이다. 당상관은 남빛, 당하관은 홍빛으로 구분하는데, 임금이 교외로 행차를 할 때에는 홍색 철릭을 입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는 관복으로 사용했다. 때문에 비상시에는 소매 부분을 찢어 지혈을 하는데 사용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극에서 남자 주인공이 옷을 찢어 여자 주인공을 지혈 해줄 때 찢은 옷이 철릭이라고 볼 수 있는 것.


Q6. 방한용 모자는 오직 여성만 착용할 수 있었다?


정답은 NO
조선시대 때엔 두툼한
패딩 점퍼도 없었을 텐데, 그들은 겨울철 추위를 어떻게 견뎠을까? 패딩은없었지만, 그들에게는 방한모가 있었다. 방한모는 남녀를 불문하고 애용되었다고 한다. 방한모로는 조바위, 남바위, 아얌, 풍차 등이 있었는데 이중에 남바위와 풍차는 남성들도 사용한 방한모를 지칭한다. 남바위는 조선 초기부터 사용하였으며 상류층 남녀가 사용하다가 조선 후기로 갈수록 사용 범위가 넓어졌다. 풍차는 남성용 방한모인데, 남바위와 거의 비슷하지만 볼끼가 탈 부착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Q7. 여성의 속치마의 색깔은 오직 흰색뿐? 


정답 NO
조선시대에는 무지기 치마라는 속치마가 있었다. 조선시대 상류층 부인들이 입던 속치마의 하나로 치마를 입을 때 속에 받쳐 입어 겉치마를 풍성하게 보이도록 했다. 길이가 서로 다른 치마 여러 개를 허리에 달아 층이 지도록 했는데, 층의 수에 따라 3합, 5합, 7합 등이 있었다고 한다.

 

Q8. 조선 전기에는 치마의 뒤보다 앞이 긴 것이 유행이었다?   

 

 


정답 YES
원주 원씨 홑치마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양 옆에 주름을 잡아 허리를 달았고, 뒤의 기장이 앞보다 긴 스타일을 보인다. 이는 조선 전기에만 볼 수 있는 형태의 치마인 터라,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을 뿐!


 

Q9. 혼례 때 여성들이 입은 원삼은 오직 양반들만 입을 수 있었다? 

 

 


정답 NO
원삼은 왕비부터 일반 서민들이 입을 수 있는 예복이었다. 궁중에서 왕비, 세자비, 세손비의 소례복으로 사용되었고 서민들은 혼례를 할 때에 입을 수 있었다.


같은 원삼이지만 왕비부터 서민들이 입은 옷이 다르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원삼은 황후를 위한 황원삼(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왕비도 황후로 즉위되었다), 왕비는 홍원삼, 비빈은 자적 원삼, 공주•옹주•반가부녀는 초록 원삼을 입었다. 원삼에 그려진 무늬 또한 신분에 따라 달랐는데, 홍원삼과 자적 원삼에는 원룡보를 달았지만 초록 원삼에는 보를 달 수 없었다. 게다가, 품계가 없을 경우 금박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하니, 사진에 있는 전라도 원삼에 아무런 금박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Q10. 원삼을 입을 때는 화관을 착용하고, 활옷에는 족두리를 착용했다?

 

정답 NO
되레 반대이다. 원삼을 입을 때에는 주로 족두리를 착용하였고, 활옷을 입을 경우에는 주로 화관을 착용하였다. 화관은 개성지방에서 활옷 착용 시 머리에 쓰던 관모로 가체에 화려한 꽃 장식을 한 것이다. 족두리는 조선시대 부녀들이 의식 때 예복에 갖추어 쓰던 관모의 하나로 일반적인 형태는 검은 비단 여섯 폭을 이어 둥글게 꿰매고 안에 솜을 넣는 형태다. 족두리는 아름답게 꾸민 꾸밈족두리, 검은색의 민 족두리, 그리고 장례 때에만 사용한 흰색 족두리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한복에 관한 퀴즈를 풀어보는데, 당신은 몇 개나 맞추었는가? 한복에는 다양한 선조들의 질서들이 담겨 있다. 알면 알수록 더욱 재미있는 법, 독자들도 아름다운 우리 의복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된 시간이었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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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K Careers Journal skcar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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